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일본원정 (문단 편집) === [[원나라]] === [[쿠빌라이 칸]]은 두 번에 걸친 원정이 모두 실패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사신단을 일본에 보내고[* 이때 쿠빌라이는 일본에 불교가 융성하다는 정보를 듣고(당시 일본의 지배자 호죠 토키무네가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승려를 부사로 삼아 보냈으나 배의 승무원들과 수행원들이 과거 사신단들의 최후를 알아내고는 선상반란을 일으켜 이들을 모두 죽이고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다.[[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23_0208_0010_0210|#]]]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차 원정을 계획하는 등[[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23_0208_0010_0200|#]] 일본을 복속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계속되는 반란에 직면하는 바람에 추진에는 실패했고, 결국 1294년 8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동시에 일본 원정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사실 쿠빌라이 칸이 일본보다 더 치려는 상대가 있었는데 바로 '''[[베트남]]'''이었다. 베트남은 원격한 거리와 열대 밀림 지대, 그리고 [[쩐흥다오]]의 지휘 아래에서 '''육로로 이루어진 원군의 진격을 막아내는 위업'''을 이룩했다. 이외에도 몽골 제국을 격퇴한 건 자바, 이집트, 인도를 꼽을 수 있다. 원의 3차 베트남 침공은 대(對) 일본 원정을 중단시키고 침공한 상황에서 1287년에 이루어졌고, '''쿠빌라이 칸은 4차 베트남 침공을 준비하던 와중에 죽었다'''.] 쿠빌라이의 후계자인 원 성종 [[테무르 칸]] 시기에 일본 원정을 재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황제 본인이 직접 반대의사를 내비쳤고 고려인 출신 관리인 홍군상[* 홍다구의 동생이다.]도 쿠빌라이 칸이 죽자마자 곧장 승상에게 가서 일본 원정 계획을 중지할 것을 간언했기에[* 이 공으로 홍군상은 고려 조정으로부터 관직을 받고 공신으로 우대받았다.] 이를 마지막으로 원 조정에서 일본 원정에 관한 논의 역시 완전히 사라진다.[[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23_0208_0010_0230|#]] 되려 원 성종은 일본과의 국교를 복원하고 중국과 일본 간 무역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원이 쇠퇴기에 접어들며 몽골만호부도 무력화되는 과정에서 남방 [[장쑤성]]과 [[저장성]] 등 화동 일대는 원 말기에 대규모 왜구 침입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